김영하는 달변가다. 

말을 어찌나 맛있게 하는지, 티브이에 그가 나와서 말을 시작하면 다른 것을 하다가도 하던 일을 멈추고 귀를 기울이게 된다.

그가 말하는 걸 보면서 신기했던 점은, 내가 평생 살면서 하지 않을 생각과 말을 한다는 것?

평소 살면서 오늘 뭐먹지... 졸리다... 이런 생각이랑 말만 하는데 작가라서 그런지 사고하는 방식이 다르다.

그리고 이런 김영하의 말들을 대중들은 좋아하고 원하는 것 같다.

 김영하의 말들을 더 듣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이 책은 김영하 작가가 데뷔하고 지금까지 한 인터뷰와 강연, 대담을 정리해서 새로운 형식으로 묶은 책이다. 책을 읽다 보면 공감할 텐데, 평소 김영하 작가를 티브이에서 (알뜰 신잡이라던가 팟캐스트라던가) 많이 본 사람이라면 글을 읽음과 동시에 마치 김영하 작가 목소리가 음성지원되는 것처럼 그의 목소리가 들리는 느낌이 들것이다.

소설이 아니라 그의 말을 텍스트로 옮겨 놓은 것이기 때문에, 김영하의 말을 더 듣고싶어 하는 분들이라면 이 책을 읽고 매우 만족할 듯싶다.(나처럼?ㅎㅎ)

김영하의 가치관, 생각, 문학작품에 대한 이야기, 예술가 작가만의 삶을 다양하게 이야기한다. 진지하게 이야기하다가도 갑자기 실없는 소리를 하기도 하고 뒤통수를 때린 거 같은 날카로운 통찰력을 보여주다가도 또 재미있는 농담 같은 이야기를 한다던지, 무조건 나를 가르친다는 느낌이 없이 나를 되돌아볼 수 있는 화두를 던져준다던지, 사람을 들었나 놨다 하는 매력이 있는 화법이 김영하 작가에게는 있는 것 같다. 

 


 

  개인적 즐거움은 얼핏 듣기에는 쉬워 보이지만 막상 시작해보면 간단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즐거움을 천대하는 사회에서 성장했으니까요. "사람이 어떻게 자기 좋아하는 것만 하면서 살 수 있나?" 제가 어렸을 때 부모님께 많이 듣던 소리입니다. 우리는 명분이나 도리 같은 '타인 지향적 윤리'를 강조하는 문화에서 자라났습니다. 자기 즐거움을 희생하고라도 타인을 위해 뭔가를 해야 한다는 것,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주말에도 쉬지 못하고 남의 결혼식에 불려 다니느라 피곤한 것이죠. 이런 환경에서 자라난 사람들에게는 감성 근육이 없습니다. 감성 근육이라는 것은 뭘까요? 육체의 근육과 비교해보면 짐작하실 수 있을 겁니다. 우리 몸에 근육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요? 조금만 운동을 해도 피곤해지겠죠. 피곤해지면 짜증이 나겠죠. 다 포기하고 소파에 누워 낮잠이나 자고 싶어 집니다. 감정은 독립된 게 아닙니다. 육체가 활동을 감당할 수 없을 때 감정은 부정적이 됩니다. 짜증과 화, 분노가 거기에서 시작됩니다. 마찬가지로 감성 근육이 없는 사람은 뭔가를 느끼기 피곤해합니다. 소설을 읽어도 재미가 없습니다. 도대체 뭔 인물이 이렇게 많이 나오고고 관계가 복잡해? 책을 집어던집니다. 줄거리가 간단한 할리우드 액션 영화 아니면 바로 잠이 옵니다. 재미를 느낄 수 없으니까요. 현대미술은 아이들이 장난친 것처럼 보입니다. 이런 사람은 오히려 일을 하는 게 더 편할지도 모릅니다. 일은 바로 보상이 주어지니까요. 아니면 게임이나 친구와의 수다를 선택하겠죠.

p.29-30


 

평소 우리는 거의 시각만을 사용하고 살아가지요. 그런데 다른 감각을 사용하면 세상은 전혀 다르게 보이고 그에 따라 우리의 감정도 훨씬 풍부해집니다.

저는 미술관에 가서 조각을 보게 되면 꼭 만져봅니다. 경보가 울리는 경우도 있었지만 나중에는 요령이 생겨서 안 걸리고 잘 만집니다. 조각을 만져보는 이유는 만져보아야만 느낄 수 있는 게 있기 때문이죠. 마애삼존불 같은 것을 보면 발과 코가 검게 변해 있거나 닳아 있습니다. 아들을 낳기 원하는 여성들이 만져보았기 때문인데, 그리스 로마 시대의 조각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조각을 보면 우리는 만지고 싶은 충동을 느끼지만 그러면 안 된다고 배웠기 때문에 참는 것이지요. 하지만 저는 기회만 된다면 꼭 만집니다. 만지면 볼 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 듭니다. 대리석과 화강암이 다르고 사암이 다릅니다. 제가 이걸 처음 시작한 것은 덴마크에 있는 로댕 전시관이었는데 로댕은 여성의 육체를 정말 매력적으로 표현했죠. 경비원 몰래 대리석으로 된 조각의 피부를 손으로 만졌을 때의 느낌을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차갑고 매끈하면서 단단했습니다. 그 후로는 틈만 나면 조각들에 손을 댑니다. 죄송합니다. 새로운 음식을 먹을 때나 예쁜 꽃을 볼 때도 꼭 냄새를 맡아봅니다. 후각도 단련할수록 발달하는 감각이지요. 우리는 후각을 잘 사용하지 않는다고 믿고 있지만 후각이 마비된 사람은 음식의 맛도 실을 잘 못 느낀다고 하지요. 어차피 존재하는 감각, 좀 더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것도 감성 근육을 키우는데 도움이 됩니다.

p.32-33


 

 마흔이 넘어서 알게 된 사실 하나는 친구가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거예요. 잘못 생각했던 거죠. 친구를 덜 만났으면 내 인생이 더 풍요로웠을 것 같아요. 쓸데없는 술자리에 시간을 너무 많이 낭비했어요. 맞출 수 없는 변덕스럽고 복잡한 여러 친구들의 성향과 각기 다른 성격, 이런 걸 맞춰주느라 시간을 너무 허비했어요. 차라리 그 시간에 책이나 읽을걸. 잠을 자거나 음악이나 들을걸. 그냥 거리를 걷던가. 20대, 젊을 때에는 그 친구들과 영원히 같이 갈 것 같고 앞으로도 함께 해나갈 일이 많이 있을 것 같아서 내가 손해 보는 게 있어도 맞춰주고 그러잖아요. 근데 아니더라고요. 이런저런 이유로 결국은 많은 친구들과 멀어지게 되거든요.

그보다는 자기 자신의 취향에 귀 기울이고 영혼을 좀 더 풍요롭게 만드는 게 더 중요한 거예요.

p.38

 


 

Q. 책을 읽는 사람이 점점 줄어든다고 하는데, 책이 계속해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책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까요?

A. 책은 살아남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책이 주는 독특한 경험들 때문이에요. 그걸 다른 것들이 대체하지 않는 한, 비록 소수일지라도 계속 이어질 거예요.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책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까? 사실 저도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제가 권해드릴 수 있는 방법은 있어요. 간단해요. 자기가 어렸을 때 재미있게 읽었던 책 베스트 10을 한번 적어보는 거예요. 다섯 개만 적어도 좋아요. 동화책부터 시작해서 여러 가지 책들이 있을 거예요. 아무튼 재미있게 읽었던 책 다섯 권 정도를 적어봐요. 그리고 책을 다시 읽는 겁니다. 다시 읽어보면 대부분 자기가 생각하던 것과 전혀 다른 책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내가 기억하고 있던 것과 다르네. 서두가 이랬었나?' 그게 새로운 책을 읽는 것보다 놀랍도록 큰 어떤 발견의 기쁨을 줘요.

저도 가끔 벽에 부딪힐 때면 어린 시절에 읽었던 책, 또는 10년 전에 읽었던 책, 또는 지금까지 읽었던 책 베스트 10 같은 것을 한번 적어봐요.    그리고 그것들을 다시 한번 들춰보죠. 그러면 '내 기억이 상당히 왜곡돼 있었구나' 하고 전혀 색다른 의미에서 다시 재미를 느끼게 돼요. 그게 독서에 대해서 읽어버렸던 즐거움, 흥분, 이런 것을 되살려줍니다. 이런 방법을 왜 권하느냐면, 새 책은 실패할 확률이 크기 때문입니다. 서점에 가서 요즘 잘 나가는 책이라고 사서 봤는데 재미없으면 어떡해요. 그런데 어렸을 때 우리가 재미있게 봤던 책 다섯 권이나 열 권, 이 책들에는 그 시절 우리를 건드렸던 그 무엇인가 있어요. 장담컨대 다시 읽어도 분명히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어렸을 때는 발견하지 못했던 것들을 새롭게 찾아내게 됩니다. 그만큼 지식이나 안목이 성장했다는 것이죠.

p.83-84

 


 

http://ted-zine.appspot.com/talk/1653

 

김영하: 예술가가 되자, 지금 당장!

오늘 제가 얘기 할 주제는요, 예술가가 되자, 지금 당장! 입니다. 이런 얘기를 꺼내면 이제 보통 분들이 다 긴장하고 약간 마음속에 저항을 하기 시작합니다. 어, 예술이 밥 먹여주나, 그리고 지금 바쁜데 무슨 예술, 그 다음에 나는 학교도 가야 되고, 취직도 해야되고, 해야될 것도 많고, 애도 학원 보내야 되고, 바쁜데 예술은 무슨 예술이냐라는 생각이 드실 겁니다. 지금 당장 우리가 예술가가 될 수 없는 이유는 수 백가지가 있습니다. 머리 속에서 막 떠오

ted-zine.appspot.com

 위의 링크는 <말하다>에 실린 테드 강연 동영상이다.

글로 읽어도 좋은 이야기들이었지만, 동영상으로 직접 말하는 듣는 걸 추천한다.

김영하는 작가일 뿐만 아니라 우리 삶에서, 우리 시대가 필요하는 말을 하는 이야기 꾼이 아닐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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