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독후감] 살인자의 기억법

yesno 2019. 7. 4. 03:58

출처: 한국일보

 

 종강을 하자마자 나는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렸다. 이번 방학을 어떤 책으로 시작하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김영하 작가의 책을 읽어보기로 했다. 

 김영하 작가는 소설이 아니라 방송을 통해서 처음 접했다. 알뜰 신잡이라는 프로그램이었는데 똑똑한 아저씨 여러 명이 나와서 여행하고 맛있는 거 먹으면서 다양한 분야로 계속 수다 떠는 그런 프로그램이었다. 나는 그 사람들 속에서 김영하라는 작가를 처음 접하게 되었다. tv속 김영하 작가를 보면서 정말 멋진 어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앞으로 저런 어른으로 나이를 먹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래서 이것저것 김영하 작가에 대해서 찾아보다가 팟캐스트 '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을 운영하는 것을 알게 되어서 들어봤는데 목소리가 너무 좋았다. 소설책을 읽어 주는 팟캐스트였는데,  그래서 한동안 알바 출퇴근 중이나 잠들기 전에 이어폰 끼고 계속 들었다. 이런 멋진 사람이 쓰는 소설은 어떤 내용일까 존나 재미있을 듯 궁금하다 라는 생각이 들어서 나중에 시간 나면 꼭 읽어봐야지 생각만 하다가 이번 방학 때 김영하가 쓴 책을 다 읽어봐야지라고 마음먹었다.

그래서 작가님이 쓴 책들을 정리해봤다.

  • 여행의 이유 
  • 읽다
  • 오직 두 사람
  • 말하다
  • 보다
  • 검은 꽃
  • 살인자 기억법
  • 랄랄라 하우스
  • 너의 목소리가 들려
  • 호출
  •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무도
  •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 아랑은 왜
  • 오빠가 돌아왔다
  • 빛의 제국
  • 퀴즈쇼
  • 네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
  • 김영하 여행자 도쿄
  • 여행자
  • 포스트잇 

생각보다 책들이 많은고, 제목을 보니 유명한 책들도 많다. 이번 해에 다 읽을 수 있을까?  2019년이 가기 전까지 도전해봐야 겠다.


review

  책장이 빨리 넘어간다. 살인자 기억법을 읽은 사람들이 하나같이 하는 이야기가 이 소설은 너무 잘 읽혀서, 흡입력이 좋아서 빨리 읽는다는 것이었다. 내 친구는 이 책을 언어영역 9등급도 잘 읽을 수 있는 책이라고 말했다. 그 정도로 책이 정말 술술 읽힌다. 이 책을 아르바이트할 때 가져가서 틈틈이 읽었는데 퇴근하기 전에 다 읽어버렸다. 이렇게 잘 읽히면서도 책의 형식이나 결말이 내가 이제껏 읽어보지 못한 신선한(?) 느낌이 든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정말 술술 읽히네 라고 생각하면서 책을 다 읽고 소설 뒷부분에 평론가의 해설을 읽는데 "이 소설이 잘 읽힌다면, 그 순간 당신은 이 소설을 잘못 읽고 있는 것이다."라는 평론가의 말에 뜨끔하고 다시 앞부분으로 돌아가서 책을 뒤적였다.

평론가의 말을 본 후에 집에서 다시 책을 읽었다.

 알츠하이머에 걸린 70살 노인. 그냥 노인이 아니고 살인자. 심지어 그냥 살인자도 아니고 은퇴한 살인자다. 살인을 그만두고 시골에서 시를 배우며 딸과 평화롭게 살아가고 있는, 어쩌면 평범한 그의 일상이 또 다른 연쇄살인범을 만나며 흔들리기 시작한다. 그와 동시에 알츠하이머에 걸린 그는 점점 기억을 잃어간다. 이 소설은 치매 걸린 노인의 시점에서 내용이 전개가 되기 때문인지 노인의 독백, 생각으로 구성된다. 그래서 그런지 다른 소설처럼 글이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뚝뚝 끊겨있다. 이런 형식이 진짜 내가 알츠하이머 환자가 된 것 같은, 단순히 글이 아니라 조각조각 흩어져 있는 기억의 조각 같았다. 병세가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조금씩 주인공 김병수의 세계가 점점 무너져 내려가는 게 느껴져서 안타까움이 느껴짐과 동시에 심지어 공포스러웠다. 마지막의 반전과 간결한 문장들 속 함축된 의미들, 그렇게 두꺼운 책은 아니었지만 많은 것을 담고 있는 책이었던 것 같다.


<첫 구절>

  내가 마지막으로 사람을 죽인 것은 벌써 25년 전, 아니 26년 전인가, 하여튼 그쯤의 일이다. 그때까지 나를 추동한 힘은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살인의 충동, 변태성욕 따위가 아니었다. 아쉬움이었다. 더 완벽한 쾌감이 가능하리라는 희망. 희생자를 묻을 때마다 나는 되뇌곤 했다. 다음엔 더 잘할 수 있을 거야.

내가 살인을 멈춘 것은 바로 그 희망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문장을 만들기가 너무 힘들었다. 명문을 쓰겠다는 것도 아니고 단지 일지일 뿐인데, 그게 이렇게 어렵다니. 내가 느낀 희열과 안타까움을 온전히 표현할 수 없다는 것. 더러운 기분이였다. 내가 읽은 소설은 국어교과서에 실린 것이 거의 전부. 거기엔 내게 필요한 문장이 없었다. 그래서 시를 읽기 시작했다.


 바람이 불면 뒤꼍의 대숲이 요란해진다. 그에 따라 마음도 어지러워진다. 바람 거센 날이면 새들도 입을 다무는 듯하다. 대숲이 있는 임야를 사들인 것은 오래전의 일이다. 후회 없는 구매였다. 늘 나만의 숲을 갖고 싶었다. 하침이면 그곳으로 산책을 나선다. 대숲에서는 뛰면 안된다. 자칫 넘어지기라도 하면 죽을 수도 있다. 대나무를 베어내면 밑동이 남는데, 그것이 매우 뾰족하고 단단하다. 대숲에서는 그래서 늘 아래를 살피며 걸어야 한다. 기ㅜ로는 사각거리는 댓잎 소리를 들으며 마음으로는 그 아래 묻은 이들을 생각한다. 대나무가 되어 하늘을 향해 쑥쑥 자라는 시체들을.


  술만 마시면 술자리에서 있었던 일을 다 잊어버리는 동네사람이 있었다. 죽음이라는 건 삶이라는 시시한 술자리를 잊어버리기 위해 들이켜는 한 잔의 독주일지도.


<마지막 구절>

 미지근한 물속을 둥둥 부유하고 있다. 고요하고 안온하다. 내가 누구인지, 여기가 어디인지. 공 속으로 미풍이 불어온다. 나는 거기에서 한없이 헤엄을 친다. 아무리 헤엄을 쳐도 이곳을 벗어날 수가 없다. 소리도 진동도 없는 이 세계가 점점 작아진다. 한없이 작아진다. 그리하여 하나의 점이 된다. 우주의 먼지가 된다. 아니, 그것조차 사라진다.